나는 참 사고파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뭘 하나를 사면 금이야 옥이야 오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주는 흥미가 떨어지고 나면 그걸 바로 내다판다. 그리고 새로운 걸 산다. 나에게 있어서 상품이라는 것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품이 주는 느낌이나 경험, 뭐 그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보다. ( 그렇게 사고 팔고 좋아하는 사람이 마누라 안바꾸는거 보면 신가하다고 아내가 농담을 하기도 한다. ) 아빠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고 파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아들녀석도 나쁜 점을 닮았다. 어느날 마트에서 무언가를 사달라는 녀석에게 "아빠는 이제 돈이 없어. 그래서 이걸 사줄수가 없단다." 라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럼 삼각대를 팔아." 라는 말로 응수하는 것을 보면...


지난 번 트위파티에서도 기부물품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참 뭔가를 파는 것이 주는 그 희열(?)감이 나에게는 일단 기쁨이다. 그것의 마진을 떠나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reciprocity 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제공하고, 그들의 눈빛이 머무르는 그 찰나를 느끼고, 그리고 상품의 본질가치와 시장가치가 Context 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 상황이 참 즐겁다고나 할까..


무언가를 사고 판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기초자산만 다를뿐이지 그 기저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가치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되지 않는 포인트가 가격이 형성되는 구간이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약간의 펀더멘털과 사람들의 심리이며, 그것들이 지속되는 타이밍(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 사이에 discrepancy 들이 약간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조금더 세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안다고 느끼면서도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거나, 혹은 긴 고통속에서 실감당해야 하거나 하는 피동적인 상황이 연출될때, 위가 아래가 되고 아래가 위가 되는 뒤바뀜의 경험을 하면서 기존의 틀이 다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그나마 옆에서 누군가가 "그것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야." 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자괴감에 이미 그 존재를 지워버렸을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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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역시 깊은 고민속에 빠져있다. 내 책상위에서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블랙베리를 보고 홈페이지 속의 아이폰을 보면서 그속의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다. "삼각대를 팔아." 라는 아들녀석의 외침이 귀에 앵앵거려서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찰나, 간편한 논리 하나가 어디선가 튀어 올랐다.


"안드로이드 나올때까지 기달려."


Posted by 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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