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었나 .. 한참 여름같은 날씨 모처름 이른 아침 시원한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 직후, 하늘은 약간씩 조도를 높여가고 도시의 아스팔트 길은 살짝살짝 갈증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그 순간이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중의 하나이다. 마음이 칙칙해서 그런지 칙칙한 날씨가 괜히 좋다. 창문을 열고 모처롬 적당온적당습의 환경을 즐기는 순간 순박한 시골아저씨의 말이 들려왔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하기 좋고, 게으른 사람들은 잠자기 좋고....."
택시기사 아저씨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저씨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집이 과수원을 했단다. 그 일이 상당히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날에는 게으른 사람처럼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말로 '과수원 지식인' 세션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듣다보니 참 세상이치가 맞닿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스럽게 들었다.
첫째, 쓸모 없는 가지치기
과실의 원활한 환기를 보장하고, 알이 굵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가지의 상태가 중요하단다. 손가락처럼 굵은마디가 손바닥처럼 펼쳐져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수시로 마디사이가 길고 얇게 자라는 가지들을 쳐낸다고 한다. 그런 가지들은 커봐야 양분만 소비하기만 하고, 수확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그래서 나무의 가지를 한번 착 보면 과수원 관리인의 레베루가 바로 진단된다는 말씀도.
둘째, 과실의 숫자조절하기
적당히 나무가 감내할 수 있는 능력 이내에서 과실의 숫자를 조절해주어야지, 한해에 너무 많은 수확을 해버리면, 그 다음해에 해걸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 해걸이는 직전해에 너무 over-production 을 해버려서 그 다음해에 production 이 확 떨어질뿐만 아니라, 당도도 떨어진다고.
셋째, 좋은묘목 성장시키기
좋은 묘목을 키우기 위해서 흙에 각종 거름을 미리 한 1년정도 먹여두고, 그 땅을 이용하여 발아를 시킨다. 그래서 발아된 씨앗을 그냥 키우나.. 어느정도 순이 올라오면, 열매가 좋고 병충해가 적은 나무의 튼튼한 가지를 하나 잘라다가 접을 붙힌다고.. 그래서 새순에서 올라온 나무의 몸통은 우량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가 영원히 번식하게 된다는.
자연속에 보편하게 널려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내가 마디가 긴 가지여서 그런건가, 아니면 해걸이를 하는건가?" 곰곰히 질문 해봤다. 경민이 몸통에 내 머리가 꼽히는 아스트랄한 상상으로 이내 생각이 옮겨지고,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22층에 다다르면서 다 없어져버린 생각이 되버렸지만...
이틀이 지난 후, 잠자기 직전에 갑자기 생각나서 기록해둔다.
ps: 학교다닐때 '과수원비비' 라고 수학과 친구들이 하던 bbs 가 있었는데..아직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