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의 겨울에서 2005 년의 초반으로 넘어가던 춥던 겨울에 CK 님 ( 당시에는 삼성전자 재직중 )이 한권의 책을 추천해줬다. 제목은 좀 진부하지만 내용자체는 최고라면서 권해준 책은 다름 아닌 보도 섀퍼의 "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처가 의자에 앉아서 곰곰히 읽고 있는 것을 보니 예전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웬지 공개하기 거시기하다고 판단되서 비공개 글로 쳐박혀 있는 예전의 글을 찾아내어서 몇가지를 손본 다음에 '공개'버튼을 눌렀다. 아마도 책의 중간정도에 있는 임금인상 15계명을 정리했었나 보다. 아마도 그때 임금인상을 은근히 바랬던 모양이다. ( 맞춤법도 잘 안 맞는 요약글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
그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문단은 "독수리"와 "오리"의 비유이다. 4년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나는 "독수리"인지 "오리"인지를 다시 한번 반문해보게 된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 앞에서 꽥꽥거리고, 고매한 문장뒤에 의지를 구겨넣는 일을 하고 있는 오리와 비슷한 점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에 'OTL'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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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한 그 때 지도교수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는 웬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책을 보며 계속해서 공부해나갈수록 예전의 내 자신이 너무 쪽팔린다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무식한 느낌이 들고 자신감이 상실되는데 이를 넘어서는 날이 오긴 오는거냐는 질문...교수님은 두팔을 살짝 넓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원래 사람이라는게 하나의 '점'으로 존재할 때는 본인이 '우주의 전부'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누구나 그렇게 시작하게 된다고.. .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며 '점'은 공간을 형성하며 '구'의 형태를 띄어가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그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시기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벽'(일종의 목표점이자 종착점)에 닿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점점 더 '구'를 부풀리지만, 부풀리면 부풀릴수록 그 '벽'이 존재하지 않음에 끊임없이 좌절하게 된다고... ( 그리하여 박사과정을 졸업할때는 내가 여기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졸업하게 된다고들 농담스럽게 이야기하는 건가...) 그리고 마침내 '벽' 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임을 깨닫고 '허거거거걱' 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그때는 죽기 바로 직전일테니 미리 대비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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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구'의 크기를 가늠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점'에서 탈출한 경험은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겸손함을 떠나서 별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비록 "오리"로 세상에 나왔지만, "독수리"로 죽고 싶다는 희망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