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꽃놀이
Chester
2008. 2. 25. 15:51
20년전 사진을 구하기 힘들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을 공부 안하고 열심히 동네 오락실에 다녀본 경험이 있다면, 슬롯머신 비슷한 '꽃놀이'라는 오락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00 원짜리를 넣으면 기본 크레딧을 살 수 있고, 크레딧을 베팅하는 것으로 가능한 조합들을 가로,세로,대각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고, 똑같은 그림들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행성 오락 1이다. 그림이 잘 맞아서 어느정도 포인트를 획득하면, 아주아주 단순한 high-low 게임으로 넘어가는데 맞추면 두배, 아니면 꽝이 되버린다. 물론, stop 을 누르는 순간 다음기회는 사라지며 그때까지 획득한 포인트는 나의 credit 으로 쌓이게 된다. 2
오랫동안 끊임없이 오락실에 용돈을 꽃놀이에 투자하면서 느낀 단순한 원리가 있는데, 1/2 의 확률로 돈을 두배로 튕기는 기회를 얻게 되면 언제나 과감하게 베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credit deposit 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말이다. 가령 credit 이 100 정도 밖에 없으면 웬만하면 작은 돈이라도 1/2 확률게임을 최소화하여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정도 좀 됐다 싶으면 행여 그것이 단 한번의 실수로 다음기회를 잃어버릴 확률이 1/2 이니 될지라도, 또 다른 1/2 이나 되는 승리의 확률을 위해 high-low 게임에 강하게 집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평균적으로 500원 (그때 버스비가 100원이 안됐으니, 학생한테는 꽤나 큰돈이다.) 정도를 집어 넣고 게임기 앞에 앉을 경우, 1/2 의 위험을 무서워해서 그림맞추기에 집중하면, 특별히 운이 좋지 않고서는 게임기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수가 없다. 그러나, 과감하게 high-low 에 집중해서 두배의 두배의 두배의 두배의 두배의 두배의 두배.. 뭐 이 정도 맞아주시면 주인아저씨한테 미안하지만 하루종일 앉아 있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credit deposit 은 더 많은 risk 를 감당하게 만들고, 이는 실피할때야 뭐 '쩝~' 정도로 끝나지만 성공하면 막대한 보상을 얻게 된다.
"기회를 기다리고, 기회가 오면 금방 망하더라도 high-low에 집착한다." 라는 단순한 전략을 설정하고, 이를 반복하기 시작했을때, 나는 우리동네 오락실에서 어린나이에 "꽃놀이의 귀재"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비지니스를 하게 되었을 때,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면 언제나, 유명한 전략컨설팅펌의 프레임웍도 아니요, 고전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도 아닌, 이 꽃놀이라는 오락의 영상이 떠오르곤 한다. "credit 을 여기서 회수할 것인가, 아니면 high-low 로 들어갈 것인가. stop 을 눌러야 하는가, 한번만 더 '베팅'해 볼 것인가.!!!" 이 시점이 되면 뇌하수체에서 아드레날린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오고, 이성은 stop 이라 외치지만 내 손은 어느새 high 와 low 버튼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시절 오락실에 빠져 있을때도, 학부때 해킹에 빠져있을 때도 그랬고, 용인에서 레이스를 할때도 이 꽃놀이식 의사결정은 반복되어 왔다. ( 물론 ROI 가 항상 좋은건 아니었다. ㅠ.ㅠ )
세월이 쌓여감에 따라서 깨닫는 것이라곤 게임을 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나 되었다 정도 ?
세상에는 1/2 의 확률 게임자체가 없으며, high-low 버튼을 누르는 시기도 3년에 한번 정도 밖에 안 오기 때문에, stop button 의 존재가 계속해서 커져간다는 것 정도 ??
(중략)
하여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뭔가 준비가 되어야 출발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작은 기회에서 더 많이 '선택'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렇기에 일주일을 더 준비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